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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승과 제자, 그 둘만이 아는 춤
    다지기/교육독서 2016.01.13 16:43

    서로 추는지도 모르게 계속 춤춰라! - <교사를 춤추게 하라>


      '이 책을 구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로 시작하는 머리말을 보고, 책 팔이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끝에 가서는 '구입하지 말고 제자리에 두어'달란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저자는 '정치인, 재계 인사, 교육 관료'에게 한 말이었다. 그의 독특한 머리말은  읽어내려가면서 왜 그러한 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교육은 타성이 강한 제도라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에, 이를 '악용'하는 그들이 보면 저자의 생각을 정책에 도입해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킬까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교육은 정치인과 교육 관료가 아니라 이 책을 읽는 교사 당신이 바꾸어야 하고,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런  무거운 부담으로 시작한 이 책은 그러나, 끝에 읽고서는 후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교육은 외부와의 '통로'를 여는 것, 오직 교사와 학생의 만남으로


      한국이든 일본이든, 교육이  황폐화되고 있는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저자는 '만약 무인도에 표류하여 의식주가 해결되었다면, 틀림없이 교사는 '슬슬 공부해 볼까?'라고 말을 꺼내며 알고 있는 지식을 어린이들에게 전수하고, 어린이들은 그것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라 말한다. 즉, 교육의 본질은 스승과 제자의 '가르침과 배움의 만남'에 있고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그 만남 속에서 비로소 외부 세계의 제3자가 나타난다. 다른 개체들(정치인, 교육 관료 등)이 아무리 이 속에 개입하려고 해도, 교육이 궁극적으로 발현되는 건 교사와 제자의 만남, 그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부름을 받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게임에 참여하여 '물드는' 것이라는 비유를 한다.


      꼭 좋은 선생님에게서 좋은 학생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럼 '좋은 교사'를 만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1950년에서 60년대 당시 일본은 교사들의 태만과 의지 결여를 지적하였다 한다. 그런데, 나중에 교사를 하기 싫어 만주로 도망갔을 정도였던 저자의 아버지에게 배웠던 제자들이 아버지를 위해 사은회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저자도 말했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좋은 교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선생님의 교수 동기와 학생의 배움의 상관관계'에 관한 의문을 품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교육에는 교사의 성품은 큰 상관은 없다고 말한다. 비록 교사의 모양새는, 그것이 연기라도 교사가 알고 있는 입장에 서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당도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교사와 아이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이고, 그 관계를 통해 학생은 스스로 배워야 할 것을 배우며 성숙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나 교사의 일방적인 통제나 지시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새 몇 년의 교사생활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 교사로서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들 중에는 물론 저자가 언급한 '교사의 모양새'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교사의 모양새'에서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판단한 것도 있었다. 오로지 교사와 학생만의 관계임이 분명한데,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학생은 내 제자가 아니다. 오로지 그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배울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있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배우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한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한 섯부른 잣대를 집어치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돌이켜보니, 나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었다.


      작년 10월 말, 젊은 선생님들과 2차 회식 중에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교대에 들어간 사람 있어요?" 물어본 적이 있다. 정말 놀랍게도 7명의 선생님들 중 나를 포함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교직 발령 첫 해가 떠오른다. 교사가 되기 정말 싫었던 나는 교직에 발을  들여놓고는 사실 갈등이 많았다. 교직생활에 대한 회의가 많이 몰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생각하면 편협한 시각과 사고를 가지고 학생들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스승의 날이 되면 찾아오는 제자들은 그 첫해에 가르쳤던 친구들이다. 작년에는 10명이 넘게 찾아와서 적잖이 당황했다. "선생님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푸념하는 그 친구들이 단지 '서로 많이 친해서 선생님께 무언가를 얻어먹으러 찾아왔다.'고 하기에는 핑계가 충분치 않다. '나도 모르게'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주었고, 그것을 제자들도 '모르게' 배웠고, 내면의 갈등 속에서 성숙할 수 있었던 계기가 강렬히 남아서 나를 기억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 느낌을, 저자는 '스승과 제자가 저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정말 명쾌한 표현이다! 이런 감정은 스승과 제자 그 사이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은,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 하나하나마다 묘하게 다르다. 다양한 스승을 만나 성숙하는 제자들처럼.


      저자가 일본인이라 전체적인 내용에 있어 우리나라의 현실과 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국적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언가 다시 벅차오른다. 감정을 공유하는 직업이다 보니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가 많지만,  그만큼 학생들이 성숙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는 교사든, '모양새'를 가지고 연기를 하고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든 상관없이 '옳은 스텝'을 밟는지 바라보며, 교사 그 자신도 머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찰나에 움직이는 '발놀림'을 하고, 그 발놀림을 보고 학생들이 배우는 '발놀림'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임과 동시에 교사의 기쁨일 게다. 열심히 발놀림을 하며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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